세계 제2차 대전의 종전과 더불어 해방의 기쁨도 누리기 전에 한반도는 분단되었다. 이승만 정권 아래 민주화체제를 도입하였으나 궤도에 오르기도 전에 「6.25 전쟁」이 일어났다. 오랜 식민지와 전화로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최빈국 중의 하나였다. 1960년 3.15부정선거는 국민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이때 전국에서 고등학생과 대학생이 민주화를 부르짖으며 일어난 것이 「4.19 혁명」이었다.
1960년대, 박정희 군부정권이 들어서면서 강력한 산업화정책을 추진하였다. 경제개발정책으로 개발도상국 중에서 획기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한 4개국을 일컬어 ‘4마리 용’이라고도 하였는데, 홍콩, 싱가포르, 대만, 한국을 일컬었다. 국가주도 산업화과정에서 부의 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군부독재가 장기화되자, 1970년대에 들어서는 국민의 민주화열망은 비등해갔다.
1979년 「10.26 정변」으로 전두환 군부세력이 또 다시 정권을 장악하게 되자, 전국에 민주화를 부르짖는 학생운동은 야화처럼 번져갔다. 신군부세력은 정권장악을 ?㎸?준비를 갖추고, 1980년 5월 17일 「전국비상계엄령」을 선포하였다. 이로써 국민의 기대가 컸던 ‘서울의 봄’은 허망하게 끝났다. 이는 1980년 「5.18광주민주항쟁」으로 이어졌다. 신군부세력의 유혈진압으로 발생한 엄청난 희생은 1980년대를 관류하면서 민주화운동에 원동력으로 작용하였다.
1987년에 일어난 박종철 군의 고문치사사건과 그 사건의 축소·은폐 폭로, 「4.13호헌조치」, 그리고 이한열 군의 최루탄 희생은 「6월 시민항쟁」의 기폭제가 되었다. 학생들은 「6월 민주항쟁」의 선봉대원으로 앞장섰다. 야당세력과 재야세력, 종교단체와 노동단체, 그리고 시민과 넥타이부대까지 민주화세력이 단결하여 「6.29선언」을 쟁취하였다. 한마디로 1960, 70년대가 우리나라의 산업화시대를 열었다면 1980년대는 민주화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4.19 혁명」으로부터 27년 후 ‘1987년 민주화체제’를 수립한 것이다.
2012년은 「6월 민주항쟁」 25주년이 되는 해이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기인 1980년대의 학생민주화운동을 조명해 본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필자는 전국연합시위의 중심지였던 연세대학교에서 대학신문과 교육방송의 편집인으로 1년간, 그리고 연이어 학생처장직을 4년간 역임하였다. 그 기간 중에 전국대학학생처장협의회 회장을 2년간 겸임하였다. 학생운동의 목표와 주장, 조직형성과 투쟁양상,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빚어진 정부와 학교와 학생운동단체들 간의 갈등 등을 현장에서 체험했다.
본 저서는 학생민주화운동을 이론적으로 정리했다기보다는, 그때의 기억을 더듬고 자료들을 정리하여, 기록으로 남기고자 『Y대 학생처장이 본 1980년대 학생민주화운동』을 엮게 되었다. 이 책의 시기 설정은 필자의 학생처장 임기(1984~1988)를 중심으로 하였고, 지역적으로는 주로 연세대를 본거지로 하여 수도권 대학들에서 일어난 학생들의 민주화운동을 조명하였다. 지금까지 1980년대 민주화운동 전반에 대하여 서술한 책은 여러 권 보았으나, 학생들의 민주화운동을 중심으로 하여 별도의 단행본으로 쓴 책은 접하지 못하였다. 이점이 필자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이다.
이 책의 내용은 5장으로 구분돼 있다. 제1장에서는 ‘서울의 봄’과 더불어 끓어올랐던 민주화열기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비극적 좌절 이후 학생민주화운동은 침체기를 맞는다. 실제 상황과는 무관하게 학생운동진영에서는 광주민주항쟁의 비극은 미국이 신군부를 지지 내지 방조한 결과로 규정하면서 반미운동의 싹이 트기 시작하였다.
국민과 학생운동진영에서 민주화운동의 과열된 파고가 잠시 침체기를 지내며 숨결을 고르는 시기에 학생민주화운동은 지하서클을 통하여 투쟁조직을 구상하며, 민주화열기를 배양하고, 재충전하는 시기였다. 그런 와중에 1984년 학원자율화조치가 발표되자 우후죽순처럼 학원가에서는 학생민주화투쟁조직이 급진적으로 생겨났다. 바로 이 시기에 제일 먼저 연세대학교에서 「여름청송캠프」란 전국 규모의 연합집회를 벌였다. 이는 학원연합집회의 효시였다. 연이어 학생들은 기존의 학도호국단을 폐지하고 총학생회를 결성함과 동시에 선두적 투쟁조직인 민주화투쟁 학생연합(민투학련)을 결성하였다. 1984년에 민정당사점거농성이 일어났고, 서울대에서는 프락치 사건 등이 일어났다.
제2장에는 각 대학 총학생회 주도로 전국학생총연합(전학련)이 출범하였고, 산하에 민족통일·민주쟁취·민중해방을 위한 투쟁조직인 삼민투위(三民鬪委)를 결성하였다. 1985년에 학생들은 삼민헌법쟁취를 위해 강력한 연합투쟁을 펼쳐나간다. 때를 같이하여 1985년 2월 총선에서 신민당이 돌풍을 일으키며 선명야당으로 부각하자 ‘직선제 개헌’운동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일어났고, 학생운동진영에서도 한층 탄력을 받게 된다. 1985년에 서울미문화원 농성사건과 민정당 중앙정치 연수원 농성사건 등이 일어났다. 동시에 학생출신 노동운동가(학출)들의 활약으로 노학연대(勞學連帶)가 활발히 결성되었다. 이때 구로연대파업이 일어났으며, 긴장한 군부정권은 「학원안정법 시안」을 마련하기에 이른다.
제3장에는 직선제개헌운동이 고조된 1986년을 조명하였다. 전두환 대통령은 연두국정연설(86. 1. 16)에서 ‘개헌불가’를 발표하자, 제일 먼저 학생운동권 진영에서 들고 일어났다. 1986년 봄 학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서울대에서 전학련 「개헌서명집회」가 열렸다. 뒤를 이어 대학교수들의 개헌촉구 시국성명서가 발표되었으며, 신민당과 민추협은 1천만 개헌서명운동에 돌입했다. 종교단체, 재야세력단체, 그리고 각계각층에서 직선제 개헌운동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1986년 3, 4월에 강력한 학생투쟁조직인 반미자주화 반파쇼민주화 투쟁npb 토토사이트(자민투)와 反제 反군부 反파쇼 민족민주투쟁npb 토토사이트(민민투)가 결성되었다. 1986년에 「5.3 인천사태」와 건국대 사건 등의 대형 사건들이 일어났다. 그 막간에 「86 아시안게임」을 치렀다.
제4장에는 민주화운동의 절정기인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6.29 선언」이 있기까지 학생운동진영을 살펴보았다. 1987년 정초부터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4.13 호헌조치」 등으로 민주화의 불길은 그 무엇으로도 제압할 수 없을 정도로 거세어져갔다. 그 와중에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 의해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은폐·조작이 폭로되었다. 지난 7년간 온 국민이 합세하여 펼쳐오던 민주화투쟁 대장정이 절정을 향할 때, 연세대 이한열 군이 직격최루탄을 맞아 처참한 모습이 매스컴에 연일 보도되었다. 「6월 항쟁」은 절정에 치달았고, 온 국민의 민주화운동세력은 일체가 되어 「6.29 선언」을 쟁취했으며, ‘1987년 민주화체제’가 시작된다. 그리하여 직선제 개헌에 의하여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치렀고, 다음해 4월에 민주총선을 실시하였다.
「6.29 선언」을 통해 민주화쟁취를 이룩한 순간에 전국노동자운동세력이 “우리는 지금부터 시작이다”란 구호를 외치며 활화산처럼 폭발해 나왔다. 1987년 7월부터 9월 사이에 노동운동의 대 투쟁기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노동운동의 배후에는 지난 수년간 학생출신 노동운동가(학출)들의 역할을 간과할 수 없다. 학출들은 노동현장에 위장 취업하여 야학이나 소모임을 통하여 노동운동의 필요성을 일깨워주었다.
제5장에는 1988년에서 1989년 사이에 일어난 학생들의 통일운동을 조명하였다. 민주화쟁취를 통해 축적한 학생투쟁조직과 역량을 십분 발휘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은 「88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공동개최를 주장하며, 통일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때 노태우 대통령은 「7.7 선언」과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비록 두 번에 걸친 남북학생주최 판문점회담은 성사되지 못했지만, 이때껏 성역처럼 여겨왔던 통일문제를 국민의 가슴 속으로 끌어들여 고뇌하게 한 것은 사실이다. 386세대는 민주화운동·민주노동운동·통일운동까지도 실천하고자 몸부림쳤다. 실로 386세대는 한꺼번에 삼두마차(三頭馬車)를 채찍질한 마부들이었다.
한국은 「88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렀으며,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최대 규모로 동서화합의 장을 이루었다. 올림픽의 주제가가 「손에 손잡고」였다. 한국은 「88 서울올림픽」 이후 소련을 비롯하여 동구 여러 나라와 정식수교를 수립하였다. 독일은 통일되었고, 소련은 와해되었으며, 동구권은 반공산주의 물결로 혁명이 일어났다. 때를 같이하여 전 세계적으로 지배해 왔던 힘의 균형에 엄청난 지각변동이 생겼다. 미·소 냉전구도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 과정이 제5장을 끝으로 마무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