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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혁백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247



서설: 1987년 이후의 한국 hulk 토토사이트를 보는 눈

이 책은 한국 민주화의 역사적 전기를 가져다 준 1987년 6월 29일 이후 한국 hulk 토토사이트가 부활, 파행, 발전, 재도약, 지체되어 왔는가를 기록한 것이다. 1948년에 근대적인 자유hulk 토토사이트가 도입된 이래 한국 hulk 토토사이트는 파행을 겪었고 마침내는 군사쿠데타에 의해 hulk 토토사이트가 전복된 이래 오랜 동면의 기간을 거쳤으나 1980년대의 치열한 민주화 운동의 결실로 1987년 ‘6.29선언’이라는 형식으로 군부 권위주의 정권이 민주적 경쟁을 회복할 것에 양보함으로써 한국 hulk 토토사이트는 부활하였다.
한국 민주주의는 부활하였으나 빠른 시일 내에 공고화되지는 않았다. 소위 ‘3김정치시대’라고 부르는 공고화를 위한 과도기를 거쳐야했기 때문이다. 3김정치시대의 민주주의는 3가지로 특징지어진다. 첫째, 한국 민주주의의 ‘제3의 물결’이 일어난 시대라는 것이고, 둘째, 베버가 이야기한 전근대적 가산주의 (patrimonialism)와 근대적인 자유민주주의가 결합한 ‘가산주의적 민주주의’ (patrimonial democracy)의 시대라는 것이며, 셋째, 사회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와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가 결합한 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1980년대 이후 박정희시대의 지배적 경제발전 패라다임으로 군림해온 발전국가모델이 쇠퇴, 폐기되었고 신자유주의(neo-liberalism가 새로운 경제패라다임으로 등장하였다.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쓰나미처럼 불어닥친 1997년 말의 외환금융위기가 신자유주의가 지배적 경제패러다임으로 부상하는데 결정적 전기를 마련해 주었다.

한국 hulk 토토사이트화의 제3의 물결: 동아시아의 자생적 hulk 토토사이트화 모델
1987년의 민주화 혁명은 한국 민주화의 ‘제3의 물결’이라 할 수 있다. 한국 민주화의 ‘제1의 물결’은 해방정국을 거쳐 분단국가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해방이후 38선 이남에 진주한 미군은 분단국가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미국식 자유hulk 토토사이트를 한국인들에게 선물로 안겨주었다. 미국식 자유hulk 토토사이트는 그 내용과 본질은 사상된 채 형식만 외삽적으로 이식되었다. 참정권을 쟁취하기 위한 장기간의 투쟁없이 한국인들은 일거에 보통평등선거권을 얻었고, 노동자들은 노조를 조직할 수 있는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도 없이 일거에 미국 수준의 노동3권을 부여받았다. 농민들은 원칙적으로는 ‘유상몰수 유상분배’였으나 실제로는 ‘무상몰수, 유상분배’로 진행된 자유주의적 농지개혁으로 유혈적 투쟁없이 토지를 소유한 소규모 영세 자영농이 되었다. 게다가 제헌헌법은 자유주의를 넘어서 사회주의 또는 사회hulk 토토사이트적인 경제조항을 삽입해놓았다. 국가에게 사회정의의 실현을 의무화시키고, 주요 자원의 국유화, 농민에게 농지분배, 공공성을 가진 기업의 국영화, 공영화를 헌법 문서화한 것이다.(고려대학교 박물관, 2009: 235) 그러나 미국이라는 외부세력에 의해 선물로 외삽적으로 (externally imposed) 그리고 조숙하게 (prematurely) 도입된 자유hulk 토토사이트 제도는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자유hulk 토토사이트 정착에 필요한 계급, 구조적 그리고 문화적 조건이 성숙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민주헌정제도가 도입되었고 농지는 이미 개혁되었고, 노동자들도 노동권과 참정권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노동자들과 농민들은 노동권 쟁취, 농지개혁이라는 의제를 내걸고 정당을 조직할 기회를 상실하고 말았다. 한국에서 계급정당이 발달하지 않은 것은 냉전과 반공주의에 주 원인이 있지만 조숙한 hulk 토토사이트에도 크게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민주화의 제1의 물결은 외삽성(external imposition)과 조숙성 (prematurity)으로 인해 hulk 토토사이트 제도가 깊게 착근하고 hulk 토토사이트 문화가 국민들 속에 내면화될 수 없었다. 이러한 자유hulk 토토사이트라는 형식과 반공주의라는 내용간의 부조화는 자유hulk 토토사이트라는 이승만정권의 공식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이승만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학-언론 연합’ (university-press nexus)을 주축으로 한 도시빈민, 재야지식인, 도시중산층 연합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렇게 형성된 자유주의 민주화 대연합은 이승만정권을 붕괴시키고 한국 역사상 최초로 민주화 혁명을 성공시켰다. 한국 민주화의 제2의 물결이 시작된 것이다. 4.19민주혁명으로 불리는 제2의 물결은 엄청난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 먼저 냉전의 최전선에서 반공주의의 압도적 영향 하에 있던 지역에서 일어난 민주화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민주화가 일어나기 불가능한 지역에서 일어난 민주화라는 의의를 갖고 있다. 둘째, 2차대전 이후 신생 독립국가들을 중심으로 세계 민주화의 제2의 물결이 일어났으나 얼마되지 않아 신생국가에서 가장 강력한 조직화된 무장세력으로 부상한 군부에 의해 신생 hulk 토토사이트가 전복되는 '민주화의 역류' (reverse wave) 현상이 일어났다. 4.19민주혁명은 전 세계적으로 민주화의 역류가 일어나고 있었던 시점에서 난공불락으로 보였던 반공 독재정권을 퇴진시키고 민주화를 이룩했다는 점에서 hulk 토토사이트의 승리로 기록된다. 물론 4.19민주혁명으로 탄생한 민주정권은 군부쿠데타에 의해 전복됨으로써 단명하였지만 ‘민주화의 역류’라는 세계시간에 일어난 민주화라는 예외성 (exceptionalism)은 그 이후 민주화를 열망하는 많은 운동가, 정치가, 혁명가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그러나 1961년 5.16군사쿠데타로 한국도 예외없이 민주화의 역류에 동참할 수 밖에 없었고, 쿠데타의 지도자 박정희 장군은 한국 근대화의 전범을 만들었고 그 영향은 두고두고 지속되었다. 박정희의 독재국가는 경제적으로는 발전국가의 전형이었기 때문에 ‘실적에 의한 정통성’ (legitimacy by performance)을 확보할 수 있었다. 박정희 정권은 실적주의와 계획 합리성 (plan rationality)을 중시하는 관료주의와 권위주의가 결합한 근대적인 관료적 권위주의 (bureaucratic authoritarian) 정권이었다. 그러나 관료적 권위주의는 절차적 정당성에 의존하는 hulk 토토사이트와는 달리 실적에 의존하였기 때문에 실적이 나빠지면 정권의 존속이 위협받는 위기에 빠지게 된다. 1979년 유신체제는 경제위기로 정통성의 위기에 빠진 박정희 정권이 야당, 지식인, 노동자, 민중에 의해 도전을 받았을 때 요구를 수용하기 보다는 강압과 탄압으로 대응하였고 결국은 측근인 김재규에 의해 독재자가 시해당함으로써 종말을 고했다. 그러나 ‘서울의 봄’은 짧았고 전두환장군이 이끄는 신군부에 의해 군부권위주의가 복원되었다. 스스로 5공화국으로 불렀던 군부권위주의는 광주 대학살을 통해 출범했기 때문에 태생적 정통성의 결함을 안고 출범했다. 따라서 신군부정권이 1984년 유화국면을 조성하자마자 민주화라는 판도라의 상자는 열려버렸고 1985년 2월 12일 총선에서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까지 장기간에 걸친 권위주의 정권과 민주화 연합세력간의 ‘밀고당기기 전쟁’ (tug-of-war) 끝에 한국 민주화의 제3의 물결을 열었다.
한국 민주화의 제3의 물결은 먼저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자생적으로 민주화를 달성한 사례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동아시아 hulk 토토사이트 선진국으로 한국, 일본, 대만을 들 수 있는데 일본은 외부점령세력인 미군정 사령관인 맥아더 장군에 의한 ‘외부세력에 의한 민주화’ (democracy from outside)에 속하고, 대만은 집권국민당이 장기적으로 민주화의 시기와 범위를 통제하는 가운데서 이루어진 ‘위로부터의 민주화’ (democracy from above)에 속한다. 한국의 제3의 민주화물결은 해방 후 미국에 의한 ‘외삽 민주화“와는 달리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정치적 자유와 인민주권을 다시 쟁취한 사건이다. 대만과 달리 권위주의 정권이 민주화의 의제, 타이밍, 범위를 통제하지 못했고 일단 정권에 의해 억압완화 (decompression) 조치가 내려지자 민주화의 판도라 상자는 열렸고 정권은 통제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한국 민주화가 외부세력이나 정권의 통제, 계획된 시간표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자생적으로 이루어졌고 장기간에 걸친 밀고 당기기 전쟁 끝에 정권과 민주화연합 세력 간에 대타협을 통해 이루어 졌기 때문에 급진적인 사회경제적 민주화 개혁은 일어나지 않았으나 역전되지 않는 내구성 (durable)있는 hulk 토토사이트를 낳을 수 있었고 한국의 민주화는 동아시아의 후발 민주화 국가들에게 모델이 되었다.
3김정치시대에 한국 민주주의는 지속적으로 발전해왔다. 1987년 12월에 한국인들은 16년 만에 처음으로 선거를 통해 정부를 직접 구성할 수 있었다. 민주주의의 전환기에 선출된 신군부 출신 노태우 대통령은 언론의 자유, 집회의 자유, 결사의 자유를 복원시켜주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문민정부’라는 이름에 걸맞게 군부에 대한 문민통제를 확고히 하였다. 그는 하나회와 같은 정치화된 군인집단을 숙청하였으며 두 전직 군부출신 대통령을 사법처리함으로써 탈군부화와 권위주의 과거청산에 있어서 후발 민주주의 국가들에게 모범 사례를 제공하였다. 1997년 말 외환금융위기의 와중에 집권한 김대중 정부는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투표를 통해 평화적으로 정권교체를 이룩했다는 것 자체로도 한국 민주주의의 공고화에 크게 기여하였고, 재임 시 독립적인 인권위원회를 설립하여 인권보호를 제도화하였고 정치적 권리와 시민적 자유를 크게 신장시켰으며, 외환금융위기로부터 나라를 구해냄으로써 ‘민주정부 무능론’에 쇄기를 박았다.

가산주의적(家産主義的) hulk 토토사이트의 시대
이와같이 3김정치시대에 권위주의로부터 자유hulk 토토사이트로의 성공적 전환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3김정치시대가 막을 내린 2002년 대선에서 모든 대선후보들이 ‘3김정치’를 종식시키겠다고 약속한데서도 드러났듯이 3김정치시대는 많은 구 권위주의의 유산을 청산하지 못한 채 민주화 제2세대에게 물려주었다.
3김정치가 물려준 대표적인 부정적 유산은 막스 베버 (Max Weber)가 가산주의(patrimonialism)라고 정의한 전근대적인 권력의 사유화, 세습화, 사인화의 정치였다 (Weber, 1978, 1010-1011). 말하자면, 3김정치시대의 한국 hulk 토토사이트는 전근대적 연고주의, 사인주의, 보스주의, 후원-수혜주의와 근대적인 자유hulk 토토사이트가 결합한 ‘가산주의적 hulk 토토사이트’ (patrimonial democracy)였다.
3김 중 김영삼과 김대중은 1970년대 이후 반독재, hulk 토토사이트화 운동을 이끌어온 양대 야당지도자였고 김종필은 박정희 권위주의 정권 내에서 온건 개혁세력을 이끌어 왔다. 그런데 박정희 시대에 양김 (김영삼, 김대중)은 권위주의 정권의 억압과 감시 하에서 hulk 토토사이트화 조직을 보전하고 추종자들의 충성을 계속 확보하기 위해 권위주의 독재자들이 조직을 유지하는 방식을 채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독재에 저항하기 위해 자신의 조직 내부는 비hulk 토토사이트적인 방식으로 운영한 것이다. 측근과 가신을 중심으로 정당과 파벌을 운영하는 가산주의적 정당을 만들고 정당의 정책결정을 철저히 비밀에 부치는 비밀주의를 채택하였다.
양김이 민주화 투쟁과정에서 의존한 가산주의는 민주화 이후에도 정치를 움직이는 중요한 지배원리가 되었다. 민주화 이후 정치의 중심에 선 3김은 근대적 민주정당을 발전시키기 보다는 사당을 지속시켰다. 정당보스가 추종자의 충성에 대한 대가로 추종자의 복지를 책임지는 가산주의는 1987년 이후 hulk 토토사이트의 제도, 절차, 과정을 도입한 후에도 존속했을 뿐 아니라 더욱 기승을 부렸다.
가산주의의 핵심은 권력의 사유화이다. 막스 베버가 개념화한 가산주의는 가부장주의(patriarchism)의 특수한 형태로 기본적으로 가족주의 (oikos)에 기초하고 있다. 군주가 권력을 공적인 것이 아니라 군주의 사유물로 여기며 국가관리를 공적인 공무원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적인 가신으로 여기는 것이다. 가산주의가 신생 hulk 토토사이트를 움직이는 실제적인 작동원리가 됨으로써 3김정치시대의 한국 hulk 토토사이트는 여전히 민주적 책임성 (accountability)과 응답성 (responsiveness)을 결여한 ‘엘리트 hulk 토토사이트’를 벗어나지 못했고 가부장주의, 지역주의, 보스주의, 가신주의, 패거리정치, 부패정치, 위임주의(delegativism)로 인해 질 높은 선진 hulk 토토사이트로 도약하지 못했다
3김시대의 가산주의는 정당의 사당화를 초래하였다. 3김은 자신들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정당을 창당, 해산, 재창당을 반복했다. 그들은 자신의 지역을 근거지로 하여 정당을 봉건영주처럼 운영하였다. 재왕적 당총재로서 자신이 만든 정당위해 군림하면서 후보공천, 당직배분, 국회직 배?隙?독점했고 추종 당원들의 충성에 대한 대가로 정치자금과 권력이라는 보호지대를 제공하였다. 3김에 의한 정당의 사당화는 정당을 공공이익을 추구하기 보다는 사적 집단의 사익을 추구하는 조직으로 만들었다. 가산주의적 정당은 민주적 정당체제의 저발전을 초래하였고 3김시대에 한국 hulk 토토사이트의 공고화를 지연시킨 가장 큰 장애요인이 되었다.
3김정치시대의 유교적 가산주의는 궁극적으로 지역으로 확대되어 지역주의로 발전하였고 지역주의는 3김시대에 한국정치를 지배하였다. 유교적 가산주의 하에서 가족 (가문)의 동심원적 확장이 지역이었고 정치인과 정당은 지역의 사적 이익을 도모하여 표를 극대화하려하였다.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의 공동체적 이익을 희생하여 특정 지역의 이익을 배타적으로 추구하는 지역주의가 3김정치시대의 각종 선거를 결정하였다.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좁은 가족, 씨족, 학연에서 넓은 지역으로 동심원적으로 확대함으로써 선거를 지역간 경쟁으로 몰고 갔다. 그 결과 지역적으로 3김 정당의 일당독재화가 일어나 한국 hulk 토토사이트의 경쟁성, 책임성, 응답성을 낮은 수준으로 머물게 하였다.

신자유주의적 hulk 토토사이트의 시대
3김정치시대에 동구의 사회주의의 몰락이 있었고 1991년에 냉전체제가 해체됨으로써 ‘20세기’는 사실상 마감되었고 (Hobsbawm, 1994) 세계화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한국 민주화는 냉전해체와 세계화와 그 시기를 같이하면서 신자유주의가 발전국가 모델을 대체하고 지배적인 경제패러다임이 되었고, ‘신자유주의적 hulk 토토사이트’라는 ‘잡종 hulk 토토사이트’ (hybrid democracy)를 낳았다.
박정희의 발전국가 모델을 수정하려는 움직임은 전두환 정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전두환 정권은 1980년대 말 중화학공업화의 위기가 유신체제 몰락의 구조적 원인을 제공하였다는데서 교훈을 얻어 과도한 국가개입에 의한 자원배분의 왜곡을 시정하고 시장에 의한 자율적 자원배분 능력을 강화시키는 시장순응적 정책을 추구하였다. 말하자면, 시장형성적 권위주의 (market shaping authoritarianism)에서 시장순응적 권위주의 (market conforming authoritarianism)로의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hulk 토토사이트화이후에도 발전국가의 쇠퇴는 지속되었다. 전두환 정권부터 시작된 경제자유화, 대외개방화, 탈규제화 정책은 hulk 토토사이트화 이후의 노태우, 김영삼 정부의 경제정책의 근간을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발전국가는 약화되었으나 발전국가 모델 그 자체는 단기간에 해체되지 않았다. 자유화 정책으로 발전국가 모델은 경쟁적 시장자본주의가 아니라 ‘민간주도경제’라는 이름하에 재벌에 의해서 주도되는 독과점적 자본주의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자유화와 탈규제 정책으로 국가는 재벌을 규율할 수 있는 많은 정책적 수단을 상실하였으며, 대외개방으로 국내시장 보호라는 당근을 통하여 재벌을 규율할 수 있는 수단이 줄어들었고, 금융자율화로 재벌은 제2금융권을 장악하고 국가소유 은행주식을 매수하여 금융자본을 사실상 사금고화하였다. 재벌체제는 실상 박정희의 발전국가에 의해 '만들어지고' (inventing bourgeoisie), ‘육성된’ 것이다(nurturing bourgeoisie). 민간주도 경제로 불리는 재벌자본주의하에서 노동은 기업의 이해당사자에서 배제되었고, 채권자인 은행과 일반주주는 경영감시자 역할에서 소외되었다. 재벌자본주의는 사회적 감시체제가 취약한 총수전제적인 족벌지배체제였다는 점에서 경제적인 가산주의(家産主義) 체제였다.
그러나 재벌자본주의의 개혁은 내부적 개혁요구와 외부적 개혁압박의 합작에 의해 가능하였다. 6.25한국전쟁에 버금가는 국난으로 불리는 1997년 말의 외환금융위기는 대통령 선거와 맞물리게 되었고 한국의 유권자들은 위기를 불러온 집권 세력에 책임을 물어 최초로 평화적 정권교체를 단행하였고 지금까지 한국의 경제를 이끌어 온 재벌자본주의라고도 불리는 가족소유자본주의의 개혁을 새 정권에 요구하였다. 여기에 더하여 당시로서는 사상 최대 규모인 55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제공한 금융의 세계정부인 IMF와 미국은 재벌체제의 개혁을 비롯한 노동시장, 공공부문, 금융체제의 4대 구조개혁을 구제금융의 조건부(conditionalities)로 제시하면서 정부와 재계를 압박하였다. 1998년 2월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와 5대재벌총수 간에 이루어진 ‘5대합의사항’의 핵심내용은 결합재무제표, 독립적 사외이사, 소액주주 권리강화, 내부거래 금지, 상호채무보증 해소, 수익성위주의 경영, 핵심역량중심의 사업구조, 대주주와 경영자의 책임강화였다. 이와 함께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2월 6일 노사정위원회라는 3자협의기구 내에서 노사정합의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신자유주의적 노동정책의 핵심인 유연적 노동시장제도를 도입하였다. 이제 노동자들은 고용주의 의사에 따라 언제든지 정리해고 될 수 있었고 기업의 구조?뗍ㅅ?언제든지 가능하게 되었으며, 몸집을 줄인 한국의 공룡 기업은 국제자본의 매력적인 인수합병의 대상이 되었다. 국제자본이 다시 서울로 들어 오게 되었고 한국은 유동성위기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외세의 압력과 내부적 요구에 의한 경제와 노동의 구조개혁으로 1997년 이후의 hulk 토토사이트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로 전환하였다. 사업보국, 기업영토확장, 기업가족, 선단경영, 기업집단, 기업복지 등과 같은 유교적 가산주의의 함의를 가진 가족소유자본주의 또는 재벌자본주의의 담론이 사라지거나 눈에 띠게 줄어들고, 그 자리에는 시장경쟁원리, 이윤극대화, 탈규제, 시장개방, 경제자유화, 민영화, 국가의 비효율성 등과 같은 시장경쟁과 사유재산의 신성화, 공적 영역에 대한 사적 영역의 우위를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적 담론이 자리 잡았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시장담론에는 hulk 토토사이트와 공존할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 먼저 사적이익추구의 극대화 논리가 국가영역에 까지 침투하여 정부운영을 공공성이 아니라 시장적 효율성 원리에 따라 운영해야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되었다. 공공기관과 공기업이 공공성과 국민의 행복증진이라는 잣대에 의해 평가되지 않고 얼마나 단기적으로 수익을 내었느냐에 따라 평가되면서 공적 영역의 사적 영역화가 일어났다. 민주정부는 ‘민주공화국’이 지향하는 공익의 극대화, 공공성의 증진이라는 목표에 충실하지 않고 시장적 효율성을 추구하는 기업경영주의적 ‘국가경영론’에 의해 운영되었다. 정치개혁에서도 신자유주의적 담론이 득세하였다. ‘고비용 저효율정치’를 ‘저비용 고효율정치’로 바꾸자는 신자유주의적 정치개혁담론은 김영삼정부 하에서 자본가 단체들로부터 나왔는데 진보정권이라 불렸던 김대중 정부 하에서 더욱 극성을 부렸다. 물론 정치도 효율적이어야하고 투명해야한다. 그러나 그것만이 정치개혁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다. 정치개혁의 최우선 순위는 정치인들이 시민의 자유보장, 국민복지의 극대화, 정치의 공공성 증진에 나서지 않으면 당선이 될 수 없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3김정치시대의 hulk 토토사이트를 요약하자면, 1987년 이후 15년 동안 평화적 정권교체, 인권과 자유의 신장, 군부에 대한 문민통제의 확립, 좀 더 책임성있고 응답하는 정부를 만들어 내었다는 점에서 자유hulk 토토사이트로의 공고화에 전기를 마련한 반면, 정치 뿐 아니라 경제에서 전근대적 유교적 가산주의를 청산하지 못하였고, 냉전의 해체와 세계화와 함께 밀어닥친 신자유주의의 물결에 휩쓸려 공공성이 실종되고, 상업적 시민 (bourgeoisie)의 영역이 공적 시민(공민: citoyen)의 영역을 압도하며, 국가에서 시장으로 권력의 중심축이 넘어간 신자유주의적 hulk 토토사이트로 행진함으로써 hulk 토토사이트의 질적인 향상을 이룩하지 못했다.

3김정치시대 이후의 hulk 토토사이트
3김hulk 토토사이트시대는 3김이 hulk 토토사이트의 본 무대에서 퇴장하면서 자연적 생명을 다했다. 그러나 사회적 생명을 다했는지는 의문이다. 여전히 3김hulk 토토사이트의 유산은 지역주의라는 이름으로 내장 (embedded) 되어 있고, 3김hulk 토토사이트의 특징인 가산주의와 신자유주의는 3김hulk 토토사이트에 고유한 특징이라기보다는 경로의존적으로 문화적 세습에 의해 학습되었거나 (가산주의), 3김이 통제할 수 없는 세계화라는 외부적 요인에 의해 강요되었기 때문에(신자유주의)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래도 역사는 진보한다. 역사는 ‘예정론적’ 또는 ‘결정론적’으로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변화시키려는 인간의 개혁의지에 의해 진보하는 것이다. 언제라도 역사는 ‘이성의 간지’(cunning of reason: 헤겔)에 의해 진보할 수도 있지만 후퇴할 수도 있는 것이다.
2002년 노무현 정부의 출범으로 탈3김정치시대가 개막되었다. 사실상 2002년은 ‘3김정치시대 이후’를 시작하는 원년이었다. 첫째, 노무현 대통령은 최초의 전후 세대 출신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그의 당선은 21세기 일어난 정치의 세대교체를 의미하였다. 둘째, 노무현대통령은 월드컵세대, 참여세대로 불리어지는 젊은 세대의 지지에 의해 당선되었다. 2002년 선거에서 세대균열이 지역균열에 버금가는 투표결정요인이었다는 점에서 3김시대에 한국의 선거를 결정해온 지역주의가 퇴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셋째, 김대중정부 말기에 이루어진 국민경선제라는 탈3김적 정치개혁이 정당보스와 정당기득권세력의 지지없이도 국민의 지지만으로 후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셋째, 2002년의 선거는 한국에서 신 유목적 hulk 토토사이트가 활성화되었다는 것을 보여준 선거였다. 노사모 (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와 같은 유목적 선거지지그룹은 21세기의 유목민처럼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면서 노무현을 당선시키기 위한 운동을 했고 결과적으로 성공하였다. 한국에서 신 유목적 hulk 토토사이트의 출현은 신 유목사회의 바탕 위에서 가능했고 ??유목사회는 외환금융위기 극복이후 김대중정부가 미래에 대한민국을 먹여살릴 차세대 먹거리로 IT산업에 주목하였고 이를 위해 초고속정보통신망과 같은 IT인프라를 전국적으로 구축하였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각종 지표에서 현재 한국은 IT산업, 정보인프라, 전자정부 뿐 아니라 SNS, 소셜미디어와 같은 웹 2.0에서도 선두를 달리고 있으며 이것이 변덕스러운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경제적으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기반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그에게 부여된 탈3김시대의 질 높은 민주주로의 도약을 이루어내지 못하고 ‘시장의 간지’에 의해 좌초하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권위주의의 제도와 문화의 청산, 부정부패의 척결과 깨끗한 정치실현, 시민의 정치참여 확대 등 한국 hulk 토토사이트의 발전을 위해 많은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시민사회가 참여하여 구출해서 당선시켜준 노무현 대통령은 정당정치에는 미숙하였다. 그는 한나라당은 물론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과도 원활한 소통을 하지 못했다. 4대개혁입법(국보법폐지, 과거사진상규명법, 사립학교법, 언론개혁법)의 실패는 주기적으로 치러진 선거에서는 소수로 밀려났지만 여전히 강고한 한국사회의 주류세력(social majority)을 다루는 정치력이 미숙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당, 여당은 물론 국민과의 소통에 실패하였고 권위주의의 정치문화와 제도를 청산하는 개혁을 하면서 그는 권위주의 만 청산한 것이 아니라 민주적 지도자가 반드시 갖추어야할 권위마저 잃어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 하에서 개혁을 밀고나갈 추진동력을 상실하게 한 것은 ‘시장의 간지’이다. 그가 집권한 시기는 세계화의 물결이 거세게 몰아치던 때였다. 세계화를 움직이는 원리는 신자유주의적 시장원리였다. 뉴욕타임즈 칼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먼은 “세계화는 국민국가에게 황금죄수복(golden strait jacket)을 입힌다. 황금죄수복을 입는 순간 정치적 선택은 ‘펩시냐 코카콜라냐’로 좁혀진다'”라고 하였다.(Friedman, 2000) 노무현 대통령도 “권력은 이미 (국가에서) 시장으로 넘어간 것같다”고 고백하였다.
‘시장의 간지’에 의해서 노무현 대통령은 시장에 압도된 것같다. 젊은 세대, 노동자, 그리고 hulk 토토사이트화 운동세력의 지지에 의해서 당선된 노 대통령이 급격히 시장친화적인 정책으로 우회전함으로써 그는 전통적 지지기반을 상실하였다. 그런다고 해서 한국의 사회적 주류세력이 노 대통령의 지지세력으로 전향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노무현 대통령과는 출신, 문화, 정체성이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과는 화합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결국 노무현 정부는 집토끼와 산토끼 모두를 잡으려다가 둘 다 놓치고 hulk 토토사이트화 이후 선거에서 가장 큰 표차로 보수야당후보에게 정권을 내어주었다.
한나라당의 이명박 대통령으로의 정권교체로 한국은 20년 만에 헌팅턴(Huntington)이 이야기한 hulk 토토사이트 공고화를 측정하는 '두번의 정권교체 테스트' (two turn-over test)를 통과한 동아시아 최초의 hulk 토토사이트 국가가 되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이명박 정권하에서 한국을 결손 hulk 토토사이트(flawed democracy)에서 완전한 hulk 토토사이트(full democracy)로 상승한 유일한 아시아 국가로 선정하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하에서 hulk 토토사이트가 발전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많은 후퇴의 징후가 발견된다. 첫째, 정당정치가 후퇴하고 있다. 정당개혁의 상징이었던 국민경선제는 이제 잔재만 남아 있을 뿐이며, 정당과 국민이 선출한 국회가 정치를 주도하지 못하고 정치적 결정을 국민에 의해서 선출되지 않는 검찰, 경찰, 사법부가 법률가적 잣대로 내리는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 (politics by other means)가 더 강화되고 있으며, 검찰에 지나치게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은 hulk 토토사이트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둘째, 자유가 후퇴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hulk 토토사이트의 핵심인 수정헌법 1조는 의회는 어떤 이유로라도 종교, 언론, 출판, 결사,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법을 제정할 수 없다고 못박고 있다. 수정헌법1조는 미국 hulk 토토사이트를 지탱해온 반석이며 미국 시민들의 자유를 보호해준 권리장전이다. 그런데 비슷한 권리장전이 장착된 헌법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시민적 자유 특히 언론의 자유가 심각하게 후퇴하고 있다는 징후가 도처에 나타나고 있으며 보수적인 국제인권단체인 프리덤하우스도 최근 한국을 ‘언론이 부분적으로 자유로운 나라(partly free)’ (Freeedom House, 2011)로 분류하면서 언론이 자유로운 나라에서 등급을 하향조정하였다. 셋째, 국가권력을 법의 테두리 내로 제한하고 개인의 인권과 시민의 자율성, 자유, 권리를 보장하고 보호하는 법치 또는 법의 지배 (rule of law)가 아니라, 법가주의적인 ‘법에 의한 지배’ (rule by law)가 강화됨으로써 정치화된 사법기관에 의존하여 정부의 법집행을 정당화하고 시민의 자유를 침해하는 국?÷?행위를 법적으로 정당화하는 일이 만연하고 있다. 법이 시민의 자유을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가 아니라 국가권력의 정당화의 보루가 될 때 hulk 토토사이트의 근간인 진정한 법치는 무너진다. 넷째, 신자유주의적 hulk 토토사이트에서 신자유주의가 강화되면서 hulk 토토사이트의 물질적 기초가 약화되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hulk 토토사이트는 ‘시장에 의한 정치’ (politics by the market)를 강화하여 자유화, 탈규제화, 승자독식의 사회, 자본편향적인 사회적 자원배분, 비즈니스-프렌들리 정부, 국가의 축소, 탈정치화를 불러와 국가에 의한 시장적 자원배분의 시정과 보완기능을 축소시켜버렸다. 그 결과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경제적 양극화는 사회적 양극화를 가져와 hulk 토토사이트의 버팀목이자 허리인 중산층이 잘룩해진 모래시계형 또는 눈사람형 계층구조를 초래함으로써 중산층에 기반한 hulk 토토사이트가 사라지고 부자의 hulk 토토사이트와 빈자의 hulk 토토사이트로 분열된 정치적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다.

맺는말: 'Hic Rhodus, hic saltus!'

3김정치시대에 박정희의 발전국가 모델’은 1997년 말 국가를 부도의 위기로까지 몰아넣은 외환금융위기와 IMF의 구제금융체제로 들어가면서 ‘역사적으로’ 폐기되었다. 그 후 발전국가 모델과 전혀 다른 신자유주의 모델이 등장했으나 한국에서의 신자유주의 모델은 3김정치시대의 ‘가산주의’ (patrimonialism)와 결합하여 하이브리드형 신자유주의로 변질되고 말았다. 이러한 가운데 탈3김시대에 이미 생명을 다한 것 같았던 재벌조직이 다시 부활하게 되었고 재벌은 신자유주의의 청산 대상이 아니라 신자유주의를 견인하는 주력부대가 되었다. 재벌이 살아나고 발전국가 모델도 살아나면서 박정희도 살아났고 ‘박정희 향수론,’ ‘개발독재 예찬론’과 함께 ‘민주정부 무능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는 민주정부와 hulk 토토사이트에 대한 신뢰를 떨어 뜨리고 한국에서의 지속가능한 hulk 토토사이트의 실현을 위협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의 조사에 의하면, 1987년 이후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한국의 민주정부들은 여러 영역에서 권위주의 정부보다 뛰어난 실적을 보여주고 있다. 1987년 민주화 이래 한국의 역대 민주정부는 국내 투자율을 비롯한 GDP 성장률, 총 고정자본 형성률, 무역수지흑자, 인플레이션 등 다양한 측면에서 권위주의 정부보다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을 뿐 아니라 선진국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Im and Choi, 2010)
대한민국이 민주화를 이룩하지 못했다면 지속적인 경제 성장은 물론 냉전의 종식과 세계화로 인해 변화된 국제경제 환경에 적응하는 데에도 실패했을 것이다. 한국의 민주정부는 세계화와 IT혁명을 주도하였고, 고도의 경제 성장을 지속해왔다. 민주화 이후 역대 민주정부들이 거둔 실적은 ‘선 민주, 후 발전’이라는 ‘민주적 발전론’ (democratic development)이 ‘선 경제발전, 후 hulk 토토사이트’라는 근대화론 보다 민주화 이후의 hulk 토토사이트와 경제발전간의 상관관계를 더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이론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한국의 hulk 토토사이트자들은 더 이상 hulk 토토사이트의 가치와 능력에 회의해서는 안된다. 한국의 hulk 토토사이트자들은 지금까지 쌓아온 hulk 토토사이트의 탑 위에서 다시 탑을 올리는 작업을 시작해야한다. 비록 3김정치시대에 민주화의 주역들은 많은 흠결이 있었으나 기본적으로 자신에게 부여된 민주화의 역사적 사명을 완수하였다. 3김정치시대 이후의 지도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그들의 결점을 지적하기 전에 그들이 수행한 성취에 찬사를 보내야한다. 거기서부터 우리는 더 질 높은 hulk 토토사이트를 향한 여정에 나서야한다. 우리는 3김시대 이후 민주화 2기의 과제인 복지화와 통일한국의 hulk 토토사이트 건설을 향해 전진해야한다.
우리는 민주정부의 선택을 좁히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강요하는 ‘황금죄수복’ 이야기나 ‘신자유주의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 (TINA: There Is No Alternative)는 이야기에 절망할 필요는 없다. 그 대신 세계화 시대에도 다양한 자본주의가 가능하며 (varieties of capitalism: Hall and Soskice, 2001), 세계화 시대에도 민주정부는 경제정책 선택권이 있으며 문제는 선택의 폭이 좁은 것이 아니라 선출된 민주정부 지도자들이 선택한 경제정책의 내용에 관한 것이라는 아담 쉐보르스키 교수의 말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Prezeworski and Yerba, 2005). 헤겔은 [법철학 서문]에서 이솝의 허풍쟁이의 우화(Aesop, The Boastful Athlete)를 인용하여 “여기가 로두스다, 여기서 뛰어라”(Hic Rhodus, hic saltus!)고 번역한 뒤 이를 패러디하여 “여기에 장미가 있다, 여기서 춤추어라” (Hier ist die Rose, hier tanze)라고 독일어로 의역하였다. 맑스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헤겔의 독일어 의역을 다시 라틴어로 옮겼다(Marx, 1852). “Hic Rhodus, hic salta!' 로두스섬이든 장미든 헤겔과 맑스가 이야기하고 하는 것은 현실주의적 행동주의이다. 이상적인 상황, 구조, 조건이 도래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현실과 부딪치며 행동에 옮겨야하며, 그것도 로두스섬의 절벽에서 절망적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아니라 장미처럼 아름답고 즐겁게 춤추듯이 뛰어라는 것이다. 우리는 3김정치시대의 한국인들이 쌓은 hulk 토토사이트의 광장에서 축제하듯이 hulk 토토사이트의 장미꽃을 피워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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